충무공 정신으로 한국 보험산업 지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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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 대한민국이 무엇으로 먹고 살아가야 할까요? 지금 잘나가는 자동차·조선·반도체가 중국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중국 뒤에는 인도·베트남이 기다리고 있어요. 답은 영국에서 찾아야 합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재보험 중개시장에서 토종 한국 브로커로 당당히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히스(HIS: Hankook Insurance Service)보험중개 한만영 대표는 만나자마자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산업혁명 이후 제조업을 통해 최고의 부국이 된 영국도 후발 주자들의 추격을 받자 영화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결국 축적된 자금을 금융 산업에 투자해 강대국으로 성장한 것처럼 우리도 지금부터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병신자식한테 효도 받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동안 소외됐던 보험 산업이 세계시장에 나가서 가장 성장할 가능성이 큽니다.” 금융을 대한민국의 차세대 먹거리로 키워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그는 특히 대한민국 보험업의 경쟁력은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자동차 배터리가 나가면 어디든 1시간 내로 보험회사가 출동해 문제를 해결해주는 나라는 한국 외에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전 세계 넘버원 서비스 품질을 가지고 있지만 문제는 부족한 전문가와 국내 기반입니다. 두 가지가 선행될 때 보험 산업의 세계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 대표는 특히 정부조직의 순환보직과 보험업계 CEO들의 짧은 임기가 산업발전을 막고 있다고 소리를 높였다. 구조적인 문제가 산업 전반의 전문성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는 보험전문가가 드물어요. 산업이 전반적으로 취약한 가장 큰 이유죠. 관계부서는 보험에 대해 조금 알만하다 싶으면 순환보직으로 떠납니다. 40%가 초선이고 정무위 다수 위원들이 마찬가지예요. 조금만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못 알아듣는 위원이 다수라는 얘기죠.”

1억원짜리 회사 800억원으로 탈바꿈 

보험중개업은 손해보험사와 재보험사 간 업무를 연결해주는 것을 주업으로 한다. 제조업으로 치면 ‘중간재’라고 할 수 있어 대중에게는 낯선 것이 사실이다. 영국 등 보험산업이 발달한 유럽 국가들의 경우 보험중개업이 전체 보험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70%에 달하는 반면 한국의 경우 1%에도 미치지 못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한 대표는 오히려 국내보다 해외 재보험 시장에서 유명인사다. 그는 뛰어난 수완과 실력으로 글로벌 업체들과 경쟁하며 업계에서 당당히 파이를 키워나가고 있다. 히스보험 중개와 국내 시장의 성장성을 눈여겨본 글로벌 상위 업체들의 인수 제안도 수차례 거절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성공을 거둔 한 대표지만 시작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한 대표는 갓 대학을 졸업해 1987년 국내 굴지의 손해보험사에 입사했다. 이후 부장 자리에 오를 때까지 힘들었던 외환위기를 넘으며 임원 자리에 오를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월드컵이 열린 2002년에 회사에서 잘렸어요.(웃음) CEO가 돼서 회사를 이끌어가겠다는 목표만 생각했던지라 충격이 컸죠. 자신감이 넘쳐 상사에게 덤벼든 게 단초가 됐어요. 부당한 훈계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 상무에게 ‘우리 둘 다 공채입니다. 실력으로 이야기하십시오’라고 받아쳐버렸어요. 한 달 후 회사에서 저를 다시 잡았지만 자존심에 ‘비행기는 사올 수 있지만 일류 비행사는 다시 살 수 없다’고 하고 박차고 나와 버렸어요.”

막막하고 쓰라린 마음에 한 대표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자는 다짐도 했지만 가족들을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생계유지를 위해 노래방, 뼈해장국집 등 창업을 알아보던 끝에 결국 그는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보험대리점을 차리기로 했다. 15년 영업노하우를 살린 끝에 몇 개월 만에 회사에서 받던 연봉의 2배 가까운 돈을 손에 쥐었지만 허한 가슴은 채워지지 않았다.

“8000만원 벌었다고 하면 7000만원은 지인들 만나 술 먹는 데 쓴 거 같아요. 목표를 잃어버리니 돈을 벌어도 행복하지가 않은 거예요. 친구들 만나서 점심때부터 인생은 이제 끝났다고 하소연하면서 시간을 보냈죠.”

잠시 야인이 되어 방황의 시기를 보낸 그는 운명적인 회사를 만난다. 지인들의 권유로 영국계 보험중개사인 히스램버트에 입사하게 된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회사가 내부 사정으로 한국철수를 고려하게 됐지만 그에게는 오히려 천금 같은 기회가 됐다.

“회사의 권유로 한국지점을 맡아서 관리하고 있는데 영국에서 보스가 와서 제게 인수를 하겠느냐고 묻더라고요. 고민하다 6개월 동안 회사와 싸워서 1억원에 샀습니다. 직원은 경리와 저 포함해서 3명 남았어요. MBO 이후 바닥부터 몇 년 동안 죽을 힘을 다해 회사를 키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직원도 70명으로 늘고 3~4위권까지 올라왔으니 다행이죠. 최근에는 800억원 줄테니 회사를 넘기라는 오퍼도 받았으니 성공한 셈이죠.”

샐러리맨 출신으로 회사를 박차고 나와 10년도 안 되는 시간에 수백억 가치의 회사의 오너가 된 셈이니 가슴이 뛸 만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지천명이 지난 한 대표로서는 한평생 쓰고만 살아도 남을 돈이었다.

“아내가 저한테 미쳤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큰 돈이지만 회사를 넘길 수는 없죠. 인수를 제의한 회사 CEO에게 한국 사람들의 혼을 너희들은 잘 모른다. 1조원을 줘도 팔수가 없다고 거절했어요. 동양인이 재보험중개를 한다고 하면 무시하는 편견을 깨고 세계시장에서 성공하는 사례로 남고 싶습니다. 명량 속 이순신이 일본 땅의 반을 준다고 한들 변절자가 되겠습니까?(웃음)”

국내 보험중개업은 아직 걸음마 수준에 불과해 성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평가한 그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쉼 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다는 한 대표의 요즘 가장 큰 스트레스는 훌륭한 직원들이라고 했다.

“저희 회사에서 제가 제일 못난 사람이에요. 저보다 연봉을 더 받는 직원들도 전체 20%가 넘거든요. 분명 HIS가 정상에 서는 날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문제는 직원들이 항상 스카우트 제안에 노출된다는 겁니다. 오늘 저녁 때도 주니어들과 술자리가 있는데 누가 오퍼를 받았는지 제가 다 알거든요. 충무공의 정신으로 나라를 지키자고 설득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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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일어나는 사고, 한국보험사가 잘 알아 

오랜 기간 노력한 끝에 회사가 정상궤도에 오르자 그는 로열티를 주면서 사용하던 히스램버트란 이름을 버리고 ‘한국인슈어런스서비스(HIS)’로 사명을 바꿨다. 진정한 토종 보험중개업체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현재 국내에는 130개 정도의 보험중개업체가 활동하고 있다.

1위부터 3위까지가 마쉬코리아, 에이온코리아, 윌리스코리아로 3개 업체의 점유율은 95%가 넘는다. 히스보험중개가 토종 재보험 브로커로서 4위에 올라서 시장의 파이를 키워가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120조원 시장을 지닌 재보험 중개시장에서 4위 업체가 관리하는 자금은 4000억원 정도에 불과해 쏠림현상이 심한 편이다. 이렇듯 척박한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토종업체의 선전이 자랑스러울 법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공기업 사기업 할 것 없이 현재 외국 보험 중개업체들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어요. 물론 자기반성도 필요합니다. 예전에는 국내 업체들의 실력이 부족했죠. 애국심만으로는 호소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경쟁이 되거든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는 막대한 국부 유출을 막기 위해 토종업체들의 분발과 경쟁력 강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보험 선진국인 영국시장에서 본 한국보험산업의 문제점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털어놨다.

“재보험 시장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영국에는 조선소가 없습니다. 싱가포르는 공장이 없죠. 그러나 한국은 석유화학회사, 조선소 다 있잖아요. 그런데 한국기업이 공장을 세우거나 조선소를 만들 때 리스크 분석을 해낼 수 없는 상황이에요. 리스크요율 분석을 위해 해외 보험사에 의뢰를 합니다. 해외업체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참으로 웃긴 거죠. 환경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데 트레이닝이 전혀 안 된 겁니다.”

한 대표는 최근 전문적인 리스크 분석을 위해 최근 첨단 전산시스템을 갖췄다. 토종 보험 중개업체로서는 최초로 전산 시스템으로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업체들과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는 실력을 쌓아 죽기 전까지 국내 선두업체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당당히 밝혔다.

“우리나라 보험산업은 전 세계 10위권이라고 알려졌지만 내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덩치는 커졌는데 자동차로 말하면 엔진을 못 만드는 거예요. 다른 산업에서 돈을 열심히 벌어서 재보험으로 외국에 퍼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금융업은 미국·영국에서만 하는 사업이 아니라는 걸 반드시 보여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보험사와 중개업체들이 분발해야 합니다. 남진·나훈아, 태진아·설운도가 함께 발전했듯이 업계 생태계가 건전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변해야 합니다.”

[박지훈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